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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정체성의 혼란, 도망과 추격, 냉전

by cinema88 2026. 1. 16.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흔히 첩보 스릴러나 추격 영화로 기억되지만, 사실은 한 개인의 정체성이 외부 상황에 의해 얼마나 쉽게 정해지고, 또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심오한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1959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광고회사 임원 로저 손힐이 자신과 무관한 스파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여정을 따라갑니다. 관객은 숨 가쁘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따라가면서도, 주인공이 점차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가 제시하는 정체성의 혼란, 도망과 추격이라는 형식, 그리고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포스터입니다.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랴' 포스터

정체성의 혼란

로저 손힐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인물입니다. 그는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직장인이며, 뛰어난 재치와 언변으로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영화 초반, 그가 ‘조지 캐플런’이라는 인물로 오해를 받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중요한 점은 캐플런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히치콕은 이 설정을 통해 정체성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타인의 인식과 사회적 맥락에 의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손힐은 자신이 캐플런이 아님을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찰, 정보기관, 적대 세력 모두가 그를 조지 캐플런이라고 단정하고 행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한 개인의 ‘자기 인식’보다 사회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손힐은 점차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지 캐플런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생존을 위해 그 역할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히치콕은 이런 상황을 매우 냉정하게 연출합니다. 감독은 손힐의 내면 독백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반복되는 오해와 추격을 통해, 주인공이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손힐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타인이 나를 누구로 보는가”에 대응하며 움직이게 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얼마나 외적인 상황에 좌우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망과 추격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망과 추격 장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추격 장면들은 단순한 액션의 연속이 아니라, 주제와 긴밀히 연결된 서사 장치입니다. 손힐이 도망치는 이유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정체성을 뒤집어쓴 탓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도주는 오해가 가져다준 잘못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히치콕은 공간 활용에 특히 공을 들입니다. 기차, 도로, 사막, 그리고 기념비적 건축물까지 다양한 장소들이 등장하는데, 이 공간들은 모두 손힐이 속할 수 없는 장소처럼 묘사됩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밭에서 벌어지는 비행기 추격 장면은, 숨을 곳 하나 없는 공간에서 정체성이 노출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넓은 화면 속 고립된 인물을 보며, 그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추격의 리듬은 손힐의 심리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영화 초반의 그는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 하지만, 사건이 반복될수록 점점 진지해지고 능동적으로 변합니다. 이는 단순한 캐릭터의 성장이라기보다, 강요된 역할에 적응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치콕은 빠른 편집과 명확한 동선으로 관객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추격을 통해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도망과 추격은 오락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주제의 반복적 확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의 그림자

이 작품이 제작된 1959년은 냉전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영화 속 스파이 이야기는 구체적인 국가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적과 정보전이라는 설정은 분명히 냉전의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히치콕은 이념 대립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불신과 감시가 만연한 세계를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시대적 불안을 드러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정보기관 역시 절대적인 정의의 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허구의 인물 캐플런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손힐이라는 실제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묵인합니다. 이는 냉전 체제 하에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쉽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감독은 이 부분을 과장하거나 감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담담하게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불편함을 남깁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국가와 체제의 논리 앞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히치콕이 이 영화에서 냉전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불확실성과 긴장이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해 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첩보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불안한 심리가 조용히 드리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