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74년 작품 '차이나 타운'은 고전 누아르 영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사립 탐정 제이크 기티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 개인의 불륜 조사에서 시작된 사건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권력의 문제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개인을 파괴하는지가 냉정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마지막까지도 관객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아서 더 큰 허무와 분노를 남깁니다.

사건의 발단
사건의 발단은 주인공이 한 의뢰를 받으면서 이루어집니다. 사립 탐정 제이크 기티스는 자신을 홀리스 멀레이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여성으로부터 남편의 외도에 관해 조사해 주길 부탁받습니다. 이 설정은 누아르 장르에서 익숙한 도입부이며, 관객 역시 큰 음모보다는 개인적인 스캔들을 예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티스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되는 일들은 단순한 불륜 사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는 수력발전 책임자인 멀레이가 밤중에 저수지와 수로를 살피는 모습을 발견하고, 물 관리 시설과 관련된 이상한 정황들을 접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티스가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정의를 구현하려는 인물이기보다는, 자신의 직업적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 역시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곧 진짜 에블린 멀레이가 등장하며, 처음 의뢰인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티스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의뢰를 한 셈이죠. 관객은 이 발단을 통해 영화가 단순한 탐정극이 아니라,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이용되는지를 보여줄 것임을 예감하게 됩니다.
물에 관한 비밀
물에 관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차이나타운에서 ‘물’은 단순한 배경 요소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기티스는 멀레이가 가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물을 방류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습니다. 이는 도시가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공식적인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수자원 관리와 토지 매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냅니다. 물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토지 가격이 떨어지고, 이후 이를 헐값에 사들 릴 수 있게 됩니다. 멀레이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려 했고, 그렇기 때문에 땅을 헐값에 사들이려 했던 거대 자본세력에 의해 제거되고 만 것입니다. 기티스가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물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권력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이 되며, 이는 개인 탐정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문제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기티스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됩니다.
권력과 탐욕
영화에서 노아 크로스는 권력과 탐욕의 얼굴로 대표됩니다. 그는 겉으로는 존경받는 사업가이자 사회 지도층 인물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도시의 미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계하는 존재입니다. 크로스는 법과 제도를 교묘하게 활용하며, 필요하다면 사람의 목숨조차 거래 대상으로 삼습니다. 중요한 점은 영화가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믿으며, 냉소적인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그는 돈이 최우선이 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기티스는 크로스와의 대화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권력은 이미 제도와 여론, 경제 구조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블린 멀레이 역시 이 권력 구조의 희생자입니다. 그녀는 진실을 숨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영화는 이 인물들을 통해, 탐욕이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설명합니다.
비극적 결말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많은 관객에게 충격과 허탈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기티스는기티스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에블린은 목숨을 잃고, 크로스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손녀를 데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장을 떠납니다. 이 결말이 비극적인 이유는, 악이 승리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비극은 정의롭지 않은 세계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경찰과 법은 무력하고, 개인의 용기와 노력은 권력 앞에서 쉽게 무너집니다. 마지막에 망연자실한 제이크에게 던져지는 “잊어버려,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야”라는 대사는 이러한 체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차이나 타운은 외부인이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티스는 과거에 사건을 여러 차례 해결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남겨집니다. 이 허무한 결말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남기지만,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차이나타운의 비극은 특정 인물의 실패가 아니라, 권력과 탐욕이 지배하는 현실 그 자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