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한 개인의 일탈을 그린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1970년대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던 불안과 절망을 집요하게 해부한 작품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트래비스 비클은 밤의 거리를 떠도는 택시 운전사로, 그는 도시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이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의 이면에 축적된 감정과 시선을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이 작품을 개인의 문제를 넘어, 병든 도시가 어떻게 인간을 변형시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병든 도시의 얼굴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처럼 묘사됩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도시를 어둡고 습기 찬 공간으로 묘사하며, 관객이 이 환경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거리에는 쓰레기와 범죄가 넘쳐나고, 밤마다 네온사인과 비가 뒤섞여 불쾌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감독이 도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입니다. 이 도시에는 휴식이나 치유의 공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과잉 상태로 흘러갑니다.
트래비스는 이 병든 도시를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그는 택시 안에서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바라보지만, 동시에 택시 안에 갇혀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처음부터 폭력적인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외로운 노동자이며, 도시를 “더러움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시점에서 트래비스의 시선은 개인적 혐오이자 사회적 비판의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감독은 도시의 얼굴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범죄와 성매매, 마약이 노출되는 공간에서 인간의 도덕성은 점점 무뎌집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트래비스의 혐오는 어느 순간 이해 가능한 반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의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관객은 도시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 그 병을 제거하겠다는 트래비스의 생각에 서서히 동조하게 됩니다.
도시가 만들어낸 폭력
트래비스의 폭력은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서서히 정당화되고 축적됩니다. 그는 거리에서 매일같이 범죄를 목격하고, 정치인과 시민 모두가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이 경험들은 트래비스에게 “누군가는 이 도시를 청소해야 한다”는 왜곡된 사명감을 심어줍니다. 중요한 점은 이 생각이 영화 속에서 논리적으로 관객을 설득한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트래비스의 사고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일기와 독백을 통해 그대로 노출합니다.
여기서 폭력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 도시가 제공한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됩니다. 트래비스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도움을 받을 사회적 관계도 없습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식은 폭력뿐입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며 관객을 설득하지만 절대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관객은 폭력의 발생 과정을 이해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 결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 속 폭력이 종종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사실입니다. 트래비스는 자신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타락한 도시를 바로잡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이 믿음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리한 상황들을 통해 강화됩니다. 감독은 이런 트래비스의 믿음을 통해 사회가 폭력을 어떻게 생산하고 합리화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력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분명 사회적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택시 드라이버'는 폭력의 기원을 매우 냉정하게 분석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의 누적
이 영화의 핵심은 폭력 그 자체보다, 폭력이 발생하기 전까지 축적되는 분노의 과정에 있습니다. 트래비스는 끊임없이 거절당하고 무시당합니다.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좌절은 분노로 전환되지만, 그 분노는 즉시 표출되지 않고 일상 속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반복적인 장면과 단조로운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트래비스의 일기는 분노가 누적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언어는 점점 단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이 변화는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객은 어느 순간 그의 사고가 극단적으로 변해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이는 분노가 얼마나 쉽게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감독은 이 분노가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도시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트래비스의 분노는 혼자 있을 때보다, 도시를 바라볼 때 더욱 강해집니다. 즉, 그의 내면과 외부 환경은 서로를 자극하며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분노는 자연스럽게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이를 비극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사회가 이 분노를 어떻게 만들고 방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택시 드라이버'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이런 문제가 결코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분노를 특별한 인물의 이상 심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립, 소외, 반복되는 좌절이 쌓일 때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감정으로 제시합니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각박한 도시가 만들어내는 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